[스포일러 리뷰]레드불 T1 다큐멘터리: 함께 날아오르다
모두가 인정하는 GOAT 페이커, 그의 구단 T1의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레드불 T1 다큐멘터리: 함께 날아오르다 (2024)
Red Bull T1 Documentary : Rose Together
리그 오브 레전드를 사랑하는 팬들, 이스포츠를 사랑하는 팬들을 위한 영화.
'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이름 't1'과 '페이커'.
이들의 22년~23년 월즈 우승까지의 내용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사실 관심 없는 사람들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을 법하다.
허나 이스포츠로서 "이 정도의 퀄리티를 만들어서 극장 개봉을 원했구나" 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다큐 자체로서의 퀄리티가 높기 때문에 티원 팬뿐만 아니라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볼만하다.
아래 부터는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시작은 22년 월즈 결승전부터 시작한다.
강력한 정배 우승 후보로 평받던 T1, 그에 맞서는 언더독 DRX와의 맞대결.
T1이 매치 포인트를 먼저 따내면서 경기를 앞서가는 듯했으나,
DRX의 기적적인 경기력과 한타로 경기는 뒤집어지고 DRX의 승리로 결승전은 종료된다.
22 결승전을 패배로 23년 시즌 T1의 모습이 나온다. 꽃을 새로 키우기 시작한 한 티원 팬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T1은 직전 로스터를 유지하고 정규 리그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이며
스프링 시즌 역시 우승의 정배로 꼽혔으나, 결승전에서 젠지에게 발목을 잡히여 본격적인 몰락이 시작된다.
선수들의 인터뷰에서, 이시기 부터 서로간의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바로 23 MSI로 이어지는데, 징동과 BLG에게 연이어 패배하며 신뢰가 완전히 깨졌다고 T1 선수단이 독백한다.
이 MSI는 22년 MSI와도 오버랩된다. 분전하여 결승전까지 힘쓴 T1이었으나 RNG에게 진 그때랑.
결국 써머 시즌에 T1은 본격적으로 흔들리는데, 원망스럽게도 주장 페이커 선수의 부상도 겹친다.
페이커 선수는 손목 통증을 호소하며 당시 감독 '배성웅'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다큐에 그대로 담겨있는데,
1년 휴식의 이야기도 나오고 병원 치료를 주기적으로 다니는 장면이 나와 보는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실 기사나 인터뷰로 봤을 땐 자세한 부상 내용, 통증을 알 길이 없었지만 다큐에 상세히 나온다.
10년 넘게 프로게이머로서 활동해서 언제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았을 손목 부상.
다큐에서 페이커 선수의 아버지는 "올 게 왔구나"라며 그를 간호했음을 회상한다.
2군 미드 라이너 '포비'를 긴급 콜업했으나 이미 신뢰도가 깨질 대로 깨진 T1은 당연히 연패의 굴레에 빠진다.
당시 감독 대행 '톰'은 대기실에서 서로 아무말도 안하고 경기만 했을 때도 있었을 정도라고.
정글러 오너 선수는 "우리가 많이 못하나? 서로의 실력에 대해 계속 의심스러웠다."라며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당시 LCK는 KT와 젠지가 쌍두마차로 달리고 있었으며 T1은 결승전에 가지도 못할 것이 당연시 된 상황.
다큐에서는 이 시기 꽃을 기르던 한 팬이 가시에 찔리며, 창문 밖으로 천둥 번개가 친다.
위험에 빠진 T1을 상징하는 영화적 장치. 꽤나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허나 페이커의 복귀는 T1 부활의 신호탄이 되었다.
T1이 한국에서 열린 월즈에 진출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허나 당시 라인업은 LCK 써머 우승자 젠지,
골든 로드에 도전하는 징동, 경기력이 바로 뒤라고 평가 받는 LNG와 BLG.
당연히 T1의 우승은 아무도 예측하지 않았고, 그게 당연한 결과였다.
허나, LPL 4팀을 두고 LCK 팀이 전부 탈락하며 T1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다큐 내내 종이학이 중요한 장치로 나오는데, '종이학을 천개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라는 속설이 있듯이 T1팬들의
우승을 향한 염원이 점점 쌓이는 것이 계속 비추어진다.
인상적인 것은, T1이 혼자 남은 상황을 종이 학에 비유하는 전용준 캐스터의 모습이다.
LPL은 노란색 종이학, 당시 혼자 8강에 진출한 북미팀 NRG는 파란색 종이학, LCK는 3개의 빨간색 종이학.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오르던 젠지를 비롯해 T1을 제외한 LCK가 전부 떨어지자
전용준 캐스터는 노란색 종이학 4개로 T1을 감싸는 비유를 보여준다.
허나 열세로 평가받던 T1이 LNG를 3-0으로 완승하며 기세를 올리며, 관계자들과 팬들의 생각이 뒤바뀌게 된다.
게다가 당시 유행했던 '선행 응원' 또한 묘사된다. 각자 T1 유니폼을 입고 쓰레기를 줍는 팬들의 모습이 나온다.
대망의 4강. 상대는 골든 로드에 도전하는 징동 게이밍. 징동에는 페이커의 오랜 라이벌 '룰러'가 핵심 전력이었다.
그 둘의 맞대결은 17년 월즈 결승전을 빼놓을 수 없다. 그때를 잠시 회고해보자 한다.
룰러는 17년도 월즈 결승전에서 챔피언 '바루스'를 활용해
페이커의 '카르마'를 점멸 궁으로 잡아내며 승리를 이끌었던 적이 있다.
항상 꿋꿋하고 감정 표현 적던 페이커가 가장 절망하고 크게 울었던 결승전이 아니었을까..
당시 온게임넷 중계로 결승전을 보던 내게는 가장 큰 충격이었다. 그 페이커가, 이미 누구보다 많은 커리어를 쌓은 그가,
분해하며 우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페이커는 이때를 기점으로 다시 왕좌에 앉지 못했다. 많이 흔들리기도 했으며 은퇴 종용을 당하는 악평도 쏟아졌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고 6년뒤인 23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선수의 같은 챔피언을 역으로 잡으며 시리즈를 승리로 이끈다.
다큐에서는 이 내용이 짧지만 굵게 나온다. 그들의 서사를 잘 요약하며 장면은 결승전으로 넘어간다.
숙소로 이동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짧게 나온다. 선수들은 22년 결승전을 회상하며
"또 2시드 대 4시드야", "또 4시드네", "웨이보가 징동보다 세" 라며 자학 개그를 하지만 마냥 웃지만은 않는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 사실 자신감에 찼지만 누구보다 간절했던 선수들.
다큐의 T1 팬이 키우는 꽃이 만개하며 그들이 우승을 하는 모습이 장면에 나온다.
22년의 아픔을 겪었기에 누구보다 간절했고 누구보다 방심하지 않았던 T1. 끝끝내 우승컵을 들며 만개한다.
한 화분 속에서 만개한 꽃, 천개의 종이학이 담긴 병. 이들이 비춰지며 영화는 마무리 된다.
당시 경기들을 지켜봤던 사람들이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고, 흥미롭게 볼만하다.
특히 중간중간 루즈해질 수 있는 부분을 과감한 편집으로 스킵해 지루해지지 않는 것이 장점.
페이커 선수는 늘 경기 전 명상을 하는데, 명상을 할 때 패배했던 기억들이 짧게짧게 지나가며 영화에 몰입감을 준다.
이 영화가 개봉하는 주의 토요일 한화생명과의 결승진출전이 치러진다. 누구보다 고생하고, 누구보다 간절한 T1.
T1팬들이면 영화를 보며 더 과몰입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선수단들 모두 힘내서 올해도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총평: ★★★★★
가장 아름다운 꽃은, 우여곡절 끝에 피는 꽃입니다.
- T1 정글러 '오너' 문현준-